쏟아지는 잠을 견디다 못해 낮에 책상에 엎드려 잠깐 눈을 붙입니다.
임신을 확인한 직후부터 며칠째 이런 날이 이어져요. 이 졸음이 중기가 되면 씻은 듯 없어질 거라 기대했는데, 사라지는 건 그 졸음 하나뿐이었습니다.
밤잠은 오히려 그때부터 다른 얼굴을 하고 다가옵니다. 임신 기간의 잠은 한 번 나빠졌다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 몸 안에서 계절이 세 번 바뀌듯 시기마다 다른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처음 몇 주, 갑자기 쏟아지는 잠
초기에 유독 졸리고 피곤한 건 기분 탓이 아니에요. 이 시기의 피로·졸음은 황체호르몬(프로게스테론) 증가 때문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프로게스테론은 이 시기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호르몬이에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함께 늘면서 수면 패턴 자체가 바뀐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이 시기는 가볍지 않습니다. 이란 임산부 605명을 시기별로 나눠 조사한 자료를 보면, 1분기(202명) 평균 피로 점수는 50점 만점에 23.53점으로, 이미 낮은 수준이 아니었어요. 다행히 이 상태가 계속되지는 않아요. 이런 심한 피로·졸음은 4개월 이후로는 대부분 가라앉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중반으로 접어들면, 낮의 졸음은 한숨 돌립니다
실제로 많은 임산부가 중기에 접어들며 낮 동안의 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느낍니다. 초기 내내 심했던 졸음이 가라앉는 시기라서요.
다만 중기라고 잠이 다 편해지는 건 아니에요. 사우디 임산부 141명을 계속 추적했더니, 수면의 질을 나타내는 PSQI 점수가 1분기 5.1점에서 2분기 5.3점으로 오히려 조금 나빠졌고, 3분기엔 6.1점까지 올랐습니다(점수가 높을수록 수면의 질이 나쁘다는 뜻이에요). 앞서 본 605명 조사 결과도 피로 점수가 1분기 23.53점, 2분기 25.78점, 3분기 26.46점으로 시기가 지날수록 계속 오르는 흐름을 보였습니다. 2분기가 유독 낮은 지점은 아니었던 셈이에요.
몸이 커지면서 허리 통증, 다리 경련, 잦은 소변, 태동 등으로 밤잠이 여러 번 끊기는 '수면 분절'도 이 무렵부터 서서히 시작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중기는, 초기의 심한 졸음만 잠깐 누그러지는 시기에 가깝습니다.
다시 잠들기 어려워지는 시기
후기로 접어들면 밤에 다시 잠들기 어려워지고, 그 여파가 낮까지 이어집니다. 3분기 피로 점수는 26.46점으로 초기·중기·후기 중 가장 높았고, PSQI도 6.1점으로 초기보다 뚜렷이 나빠졌습니다.
이 시기엔 여러 불편이 한꺼번에 겹칩니다. 밤마다 다리가 근질거리거나 저려서 잠들기 어려운 하지불안증후군은, 10개 조사·2,431명을 종합했을 때 3분기에 평균 22.9% 정도에서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밤마다 다리가 근질거려 잠들기 어렵다면 함께 읽어볼 만해요). 위산이 역류해 속이 쓰린 증상도 늘어나는데, 21개 조사·9,497명을 종합한 결과 1분기 26.12%였던 비율이 3분기엔 55.93%까지 올랐습니다. 커진 자궁이 위를 누르고, 호르몬 변화로 식도 아래쪽 조임근이 느슨해지는 게 원인으로 설명됩니다.
화장실 때문에 밤에 깨는 일도 늘어요. 미국의 대규모 조사에서는 야간뇨 비율이 56.4%로, 임신 경험이 없는 여성(16.1%)보다 뚜렷이 높았습니다. 다리에 쥐가 나는 증상도 1분기 20%대에서 3분기엔 48~65% 수준까지 늘어납니다. 미국·이란·인도 등 해외에서 임산부를 대상으로 한 여러 조사에서 공통으로 나타난 흐름이고, 연구마다 편차가 있어 범위로 적었어요. 체중이 늘면서 기도가 좁아져 코골이가 심해지기도 해요. 후기의 밤잠은 원인 하나가 아니라, 이런 불편들이 겹쳐서 자주 끊기는 쪽입니다. 후기 불면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는 다음 글에서 따로 다룰게요.
자는 자세, 이렇게 알려져 있어요
배가 불러오면 자연히 눕는 자세도 고민하게 됩니다. 2·3분기에는 옆으로 눕는 자세가 권장돼요.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무릎 사이와 배 밑에 베개를 하나씩 받치는 방법이 알려져 있습니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옆으로 눕는 것 자체가 반듯이 눕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반듯이 누우면 왜 피하라고 할까요. 대략 20주가 지나면 커진 자궁이 하대정맥과 대동맥을 눌러 하반신에서 심장으로 돌아오는 혈류가 줄어들 수 있어요. 그러면 심장이 내보내는 혈액량도 줄어서 어지럽거나 혈압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증상은 대개 일시적이고, 특히 왼쪽으로 자세를 바꾸면 곧 풀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자세가 정말 맞는지는 태반 위치나 다태아 여부 같은 개별 조건에 따라 달라지므로, 구체적인 건 담당 의사·조산사와 확인하는 게 안전해요.
이런 신호는 바로 병원으로
다음 신호는 미루지 말고 확인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코를 골거나 숨이 멎는 느낌
갑작스러운 체중 증가·부종
가시지 않는 두통
시력 이상
오른쪽 윗배 통증
소변량 감소
2번부터 6번까지는 자간전증(임신중독증)의 경고 증상입니다. 코골이·수면무호흡과 자간전증 사이의 연관성도 여러 국제 종합분석에서 나타납니다. 수면장애가 있는 임산부는 자간전증 위험이 뚜렷이 높았고(오즈비 2.80, 95% 신뢰구간 2.38~3.30), 코골이 등 수면호흡장애만 놓고 보면 오즈비는 3.52(95% 신뢰구간 2.58~4.79)까지 올라갔습니다. 다만 이 숫자는 두 가지가 함께 나타나는 정도, 곧 연관성을 보여 주는 값이에요. 수면장애가 자간전증을 직접 일으킨다는 뜻은 아닙니다. 국내에서도 과체중 임산부 5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비슷한 방향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표본이 작아 그 배율 자체보다는, 같은 경향이 국내에서도 보인다는 정도로 참고할 만합니다. 코골이가 갑자기 심해지거나 자다가 숨이 막히는 느낌이 반복된다면, 미루지 말고 병원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코골이 원인과 수면 무호흡 위험 신호를 정리한 글도 참고할 수 있어요.)
여기서 다룬 건 이 시기의 변화이고, 출산 뒤 수유하는 동안의 잠은 조건이 또 달라서 따로 봐야 합니다. 잠이 안 온다고 영양제나 허브차를 스스로 챙겨 먹기보다는, 무엇을 먹어도 되는지부터 담당 의사·조산사에게 먼저 물어보는 편이 안전해요. 이 글은 정보를 정리한 것이지 진단이나 처방이 아니에요. 몸에서 낯선 신호가 느껴지면 검색보다 진료를 먼저 받아보세요.
오늘 밤 눕기가 유난히 불편하다면, 옆으로 눕고 무릎 사이에 베개를 하나 끼워보세요. 책상에 엎드려 졸던 그 잠도, 잠깐 편해진 한숨도, 다시 얕아진 이 밤도, 몸 안에서 계절이 도는 소리입니다.